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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go
starain  (2007-06-29 15:37:51)



1. 탱고의 어원

탱고의 어원은 아직도 논쟁거리로 남아있지만
접촉을 의미하는 라틴어 'tangere'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스페인어 사전에는 '흑인들의 축제와 춤'으로 정의되어 있다.



2. 쿠바의 하바네라 (Habanera)

19세기 전반에 쿠바에서 유행한 무곡인 하바네라는, 2/4박자의 우아한 댄스 리듬으로
쿠바의 수도 하바나의 사교계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여, 19세기 중엽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출입하는
뱃사람들에 의해 아르헨티나로 건너가게 된다.


이 무렵 (19세기 말에서 제1차 세계대전까지) 유럽으로부터 엄청난 수의 이민자들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동남쪽에 위치한 보카라는 지저분한 항구로 몰려왔다.
엄청난 경제 성장과 성숙한 문화를 향유하고 있던 당시의 아르헨티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삶을 보장하는 이상향으로 여겨졌던 까닭이다.
보카는 주로 이탈리아 남부지방에서 이민 온 저소득층 주민들이 공업지구에 접해 모여 살던 곳으로
보헤미안풍의 항만 노동자와 뱃사람들, 여인들이 삶에 지친 권태감과 고독감, 체념적인 인생관이
지배하는 배경속에서 무엇인가 강렬하게 호소해 오는 것 같은 느낌의 탱고가 태어났다.
보카의 빈민굴에서 발생한 탱고는 처음에는 항구에서 기생하는 도박사, 밀수꾼 등 헐벗은
보헤미안들의 세계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했으므로 "포르테냐 음악(Musica portena)" 이라고도
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항구도시 : Port > Porte (속어로, 부에노스 아이레스 토박이라는 의미).
따라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일반 시민들은 포르테냐 음악으로 불린 탱고를
처음엔 음악으로서도 댄스곡으로서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하세계의 구성원들이 모두 만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빈민구역에서
금새 대중적인 춤이 되었다.



3. 가우초 (Gaucho)의 애상

에스파냐·포르투갈에서 들어온 백인과 원주민 인디오인 과라니족과의 혼혈종족으로
남아메리카의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대초원 팜파스를 무대로 살아가던 이들 가우초는
인생의 대부분을 말 위에서 보내며 고독한 감성으로 자신들만의 서정적인 선율을 만들어 노래했다.
'생명의 노래'라는 의미를 지닌 비달리타 (Vidalita)에는 외로움을 달래는 가우초들의 체념과
우수가 음유시인들의 고독한 숨결처럼 드리워져 있다.



4. 밀롱가 (Milonga)

4분의 2박자의 강렬한 리듬 위에 아르헨티나 목동들의 노래인 가우초의 선율이 얹혀진
'밀롱가 (Milonga)' 형식이, 초기 탱고 (1860-70)의 모습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술집에서 '쿠바 무곡 (Danza Cubana)'이라고도 불리워진 하바네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그 지방색에 물들어 템포도 빠르고 멜로디도 아르헨티나 풍이 강한
'밀롱가(milonga)'라는 무곡으로 변해 갔다.
밀롱가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무곡으로 성하게 된 것은 1860년에서 70년에 걸쳐서였다.

춤을 추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5. 칸돔블레 (Candomble)

탱고의 기초가 된 것은 아프리카 노예들의 춤 Candombe 였다.
고향을 잃은 노예들이 자신들만 춤추는 장소 '탐보' (혹은 '탕고')에 모여서 춤을 췄다.
원래 이 춤은 커플댄스가 아니었는데 유럽 청년들이 이 춤의 스텝을 남녀가 추는 커플댄스에
응용하였다.


밀롱가에서 탱고가 탄생되었으나 발전의 단계에서 크게 영향을 준 것은
바로 이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중심으로 유행한 Candomble 의 리듬이었다.
칸돔블레는 흑인 노예의 자손들이 멀리 정글 속의 주술적 의식을 전습한 것으로 생각되는
싱코페이션을 가진 2/4박자의 카니발 음악으로, 밀롱가가 이 칸돔블레의 영향을 받아
탱고로 되었다고 한다.


칸돔블레 (흑인 노예들의 춤) + 가우초들의 춤 + (하바네라의 변신) 밀롱가 = 탱고



6. 콘티넨털 탱고 (Continental Tango)

탱고가 아르헨티나에서 바다를 건너 세계로 퍼지게 된 것은 1906년 경이었다.
해군 연습선에 악보가 실려 프랑스와 독일의 항구에 내려지게 되었고,
그 후 몇몇 알려진 아티스트들이 연주단을 이끌고 건너갔다.
정열과 향수를 품은 탱고의 매력은 파리를 기점으로 전 유럽을 풍미했다.


탱고가 이처럼 갑자기 유행한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당시의 사교 무도의 대부분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떨어져서 춤추었고,
어쩌다가 왈츠처럼 남자가 여자의 허리에 가볍게 팔을 감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탱고는 종래의 어떤 춤보다 파트너의 얼굴과 몸이 밀착되어 서로의 호흡이나 체온을
강하게 느끼면서 남자가 여자를 돌리기도 하고 무릎을 굽혀 몸을 낮게 하여 포옹하기도 하면서
춤을 춘다. 이렇게 종래의 춤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관능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탱고에 열중하게 되었다.


콘티넨털 탱고라고 하는 것은, 아르헨티나 탱고가 파리에 소개되면서 품위있게 변신한
댄스 음악을 가리키는 것으로, 아르헨티나나 우루과이 이외 나라들의 탱고를 한데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7. 아르헨티나 탱고와 콘티넨털 탱고의 차이

아르헨티나 탱고는 빈민굴 같은 곳에서 수 많은 애환을 갖고 발달한 것인데 반해,
콘티넨털 탱고는 처음부터 숙련된 음악성에 유럽 상류사회의 플로어에서 신사 숙녀가
춤추기 위한 무도회의 반주로 발전해 왔다는 차이를 보인다.


아르헨티나 탱고에서는 반도네온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반면,
콘티넨털 탱고에서는 반도네온 대신 아코디언이 쓰인다.
반도네온의 음색은 어둡고 무겁다. 그리고 멜로디를 연주할 뿐만 아니라 강력한 스타카토나
레가토 주법으로 아르헨티나 탱고의 독특한 리듬감을 만들어 낸다.
이에 비해 아코디언의 음색은 밝고 흘러가듯이 멜로디를 노래한다.


아르헨티나탱고는 정열적이며 거칠지만 가리워지지 않는 인간의 감정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속에서 속악적인 면을 배제하고 품위있으면서도 정열적이며 이국 정취에 넘치는
댄스음악이 되었다.
콘티넨털 탱고는 현악기 중심의 악단으로 편성되고, 노래보다는 댄스를 위한 음악으로서의 성격이
짙다. 일반적으로 멜로디가 가요적이며 친하기 쉽다. 또한 리듬도 가볍고 하바네라에 가까운
형태의 음악이다.



8. 탱고의 부활

아르헨티나 탱고의 역사에서 1960-70년대는 '침묵의 시대'였다.
아르헨티나의 경제 파탄이 70년대에 들어 특히 심화되면서 악단은 우수한 연주가나 가수를
상시 고용하기가 어려워졌다.
탱고의 쇠퇴는 경제적 이유로 인한 우수 오케스트라의 해산과 분열,
여기에다 대중의 음악적 기호의 변화 등으로 찾아왔다.
따라서 연주단의 편성도 축소되고 레코드 녹음이나 해외공연 등의 특별한 경우에만 연주되는
스타일이 되었다. 그 결과 침체한 국내를 떠나 해외에서 연주하는 악단이 많아졌다.
한편 그 시기는 왕년의 거장들을 차례로 잃어버린 시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등불이 완전히 꺼져버린 것은 아니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곡가가 아스토르 피아졸라이다.
그는 탱고에 매우 독창적인 화음개념을 이끌어와 1959년에 'Adios Nonino'를 발표한 이후
많은 걸작을 만들어내면서 탱고에 새로운 차원을 제시하고, 그것들을 클래식 연주가들의
공연목록에 포함시켰다.


1977년 아르헨티나 정부는 해마다 12월 11일을 '탱고의 날'로 제정했다.
이 날은 명가수 카를로스가르델과 훌리오 데카로의 탄생일.
이 제정에는 탱고가 세계를 석권했던 그 좋았던 시절에 대한 추억과 부흥의 기대가 모아져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80년에 탱고는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고 부흥의 리듬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군정시대의 어두운 그림자와 포틀랜드 전쟁의 후유증도 점차 사라져가고
다시 세계를 향한 진출이 시작된 것이다.


87년 탱고의 명곡에 당시의 스텝을 가미한 '탱고 아르헨티노'의 성공적인 공연이 그 기세를 더했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서서는 영화 '여인의 향기', '트루라이즈' 를 통해 그 멋진 모습이
춤과 함께 대대적으로 부흥의 기미를 보인다.



* 탱고의 발생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이 있으나,
  여러가지 글들을 참고로 하여 나름대로 정리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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